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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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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상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8
조회수 1328

 

동상면

완주군 2읍 11면의 하나.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 읍내 동쪽이 되므로 동산면이라 하여 은천, 산천, 운곡, 신기, 대아, 축령, 수만, 학동, 지향, 입석, 율치, 황조, 시평, 묵계, 신월, 용연, 구수, 율목, 검태, 장수, 거인의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전주군에 편입되어 대아, 수만, 사봉, 신월의 4개 리로 개편/관할함. 동쪽은 진안군 주천면, 정천면 부귀면, 남쪽은 소양면, 서쪽은 고산면, 북쪽은 고산면과 운주면에 닿음

신월리

이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주위가 마치 새로 시작되는 초승달 모양과 같다하여 그렇게 불리워지게 되었다.
현재 신월리는 거인, 원신, 용연, 구수, 검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거인은 거인리(巨人里)라고도 한다. 거인은 이 마을에서 이름난 큰사람들이 많이 나왔다는데에서 유래된 것이다. 임금이 써준 어필(御筆) "호남한사탈포소원"(湖南寒士脫袍掃園)의 글씨를 받은 정진사(鄭進士 이름은 불명)가 이 마을에서 나왔다고 한다.
원신은 다른 마을과 합하여 신월리라 부르기 전 원래의 신월리라는 의미이다.
용연은 이 마을 가까이에 옛날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소(龍沼)가 있었다하여 용소(龍沼)가 "용못"으로 바뀌어지고 다시 용못을 한자로 표기하게 된 것이다.
구수는 "구수왜"라 부르기도 한다. 구수란 이름은 이 마을이 마치 소의 구유소죽통처럼 생긴데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그렇게 불리워지던 것을 음만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검태는 원래 "검태"(劒台)로 표기되었다. 그것은 이 마을 뒷산에 "장군대좌혈"의 명당이 있다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따라서 이 마을 뒷산의 산 이름에는 "칼봉" "장군봉" "말봉" 등이 있다. 검태는 "검태"(劒台)가 바뀌어진 것이다.

사봉면

“사봉”(飼峰)이 변하여진 것이다. 그것은 이 마을 뒷산의 이름이 곧 사봉(飼峰)이기 때문이다. 이 사봉(飼峰)은 이 마을 옆 마을인 검태의 뒷산 “장군대좌혈”의 명당과 관련이 있다. 곧 이 산이 장군의 말(馬)이 먹이를 먹는 것과 같은 형이라 하여 그렇게 불리워지게 된 것이다. 현재 사봉리는 묵계, 원사, 신사, 시평, 밤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묵계는 이 마을 위에 옛날 먹을 만들었던 곳이 있어 마을 앞 시내가 먹물과 같았다는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 마을 뒤에 연석산 곧 "벼루산"과 문필봉이 있다. 이들 이름과 묵계는 상호연관이 있는 듯하다.
원사는 다른 마을과 합하여 사봉리라 부르기 전 원래의 사봉리라는 뜻이다.
신사는 원사봉리 옆에 새로히 이루어진 마을이란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워지게 되었다.
시평은 원래 시평이라 표기하였다. 시팽은 아펭 말한 문필봉, 연덕산, 장군봉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문장가와 명필가들이 이 곳에 말을 매어 두던 고싱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와 문장을 논할 때 말들이 이 곳에서 울었다 하여 그렇게 불리워지게 되었다.
하율은 상율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 마을 뒤에 "밤티"가 있기 때문에 원래는 "밤티"라 하였던 것이 한자로 "율치"로 표기되었으며 다시 뒤에 하율과 상율로 나눠지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수만리

조선 중엽 전라도 관찰사로 있던 이서구(李書九)가 이 마을을 지나가다 말하기를 “이 곳은 장차 물이 가득차게 될 것이다”고 예언하였다 하여 그때부터 그렇게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수만리는 단지,입석,학동,다자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단지는 단지동(丹芝洞)이라고도 부른다. 이 마을 뒷산에서 약초(藥草)인 지초(芝草)가 많이 생산된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 옆에 지향동(芝香洞)의 마을 이름이 있다. 지향동도 지초의 향기가 많이 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리워지게 된 것으로 이 이름도 또한 이 마을에서 지초가 많이 생산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입석은 "선들 "선돌"의 한자 표기이다. 이 마을 동구 밖에 "선돌"이 있었다.
학동은 원래 학동(鶴洞)으로 표기하였다. 학동(鶴洞)은 이 마을 뒷산에 "비학소귀혈"의 명당이 있다는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곧 학(學)은 학(鶴)의 바꾸어진 표기이다.
다자는 "다다미"라고도 부른다. "다다미"는 "다자메"의 와전으로 보인다. 다자메는 아들을 많이 낳는 곳이란 의미이다. "메"는 곳의 옛말이다.

대아리

일제시대에 저수지를 막기 위하여 마을을 이 곳으로 옮겨 새로이 붙인 이름이다. 원래는 “대실”이었으나 이 대실은 현재 대아 저수지 속에 잠겨 있다. 대실(大實)은 큰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큰골”의 한자 표기이다. 현재 대아리는 은천, 산천, 음수 마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은천은 "원천"(源川)이 바뀌어진 듯하다. 은천은 대아저수지로 흘러들어오는 물의 상류가 시작되는 마을이다. 따라서 깊은 골짜기 속에 있기 때문에 "숨은 내"라는 의미가 한자로 그렇게 표기된 듯하다.
산천은 "산내"라고 불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산내는 곧 산과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 

음수는 이 마을 뒷산에 "갈마음수혈"의 명당이 있다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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