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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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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봉동읍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8
조회수 1036

 

봉동읍

완주군 2읍 11면의 하나,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서 (1935년까지) 봉상면이라 하여 신봉, 명탄, 고천, 명덕, 동간, 봉강, 구만, 서당, 건전, 동촌, 정동, 봉게, 둥리, 점리, 서두,구미, 신화, 보상, 낙상, 낙정, 쌍정, 낙평, 신기, 신풍, 한계, 중평, 신후, 부봉, 대성, 동리, 성덕, 신성, 신상, 신덕, 천내, 용화, 봉림, 읍소, 봉실, 추동, 봉덕, 은상, 은하, 우산, 구교, 장기, 오동, 상원, 하월, 신교, 상지, 임내, 오황, 양정, 사거리, 쌍계, 구정, 탑리, 관음, 무등, 신흥, 만동의 62개 리를 관할 하였는데 1914년 군면 폥합에 따라 우동면의 주동, 통정, 신성, 창리, 구암, 봉암, 신하, 산정, 산주, 명동, 신둔, 용암, 둔산, 죽동, 구복, 금반, 장구, 신정, 전강, 서초, 제촌, 제상, 만석, 옥동, 신포, 야산, 서당의 17개 리와, 창덕면의 월산리 일부와 익산군 우북면의 덕동, 관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봉상과 우동의 이름을 따서 봉동면이라 하여 고천, 구만, 구미, 구암, 낙평, 둔산, 성덕, 신성, 용암, 율소, 은하, 장구, 장기 제내의 14개 리로 개편하였다.

1973년 7월1일 대통령령 제 6543호에 의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고산면, 남쪽은 등진면, 서쪽은 익산군 왕궁면, 북쪽은 비봉면에 접했다.

제내리 (堤內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우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제촌리 제상리 서초리 만석리 옥동리 신포리 전강리 일부와 봉상면의 탑리 관음리 무등리 신흥리 만동리를 병합하여 제내리라 하여 봉동면에 편입되었다.

  • 서초리(西招里. 西楚골) 신촌은 제촌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고, 서초리는 제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 우주현의 고을 터인 구기(舊基)의 서쪽이 되므로 ‘서촌골→서초골’이라 함.
  • 옥동(玉洞) 예전 우주현(紆州縣)의 치소(治所)로 옥(獄)이 있던 자리이므로 옥동이라 함. 일설에는 앞 산에 옥녀봉(玉女峰)이 있어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 만동(慢洞. 蔓洞) 풍수설에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으로 활을 당기는 형국이므로 만동이라 했다 한다.
  • 무관(舞觀) 부분명- 관음(觀音) ‘무석’은 무등과 석간에서 한 자씩 취한 이름. 관음은 그 곳에 관음사가 있었다. 무등은 뒷산이 옥녀 무수형(玉女舞袖形)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하고, 석간은 마을 아래 돌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 일컫 는 이름이라 한다.
  • 만경동(萬頃洞.望景洞) 만경동은 만경강 근처이므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으므로 망경(望景)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 신촌(新村. 새말)
  • 제촌(堤村. 방죽안) 본시 제내리의 중심 마을로 방죽의 안쪽에 위치했으므로 생긴 명칭.

장구리 (長久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우동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구리 신정리와 전강리 죽동리 둔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의 중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장구리라 하여 봉동면에 편입됨.

  • 원장구(元長久) 원장구는 법정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원(元)’을 덧붙인 것.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목동의 본 이름은 나막골로 나무가 많았다. 죽간리는 장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역기(驛基. 역터, 新亭) 우주현 때 역이 있었다.
  • 전강(前江) 부분명-신기 전강은 마을 앞에 내가 흘러 ‘앞강마을→전강’ 신기는 역기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재빼기는 재가 박 힌 곳이란 말로 ‘잿등’과 같은 이름.

구암리(九岩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우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암리 통정리 신성리 창리 야산리 구복리 서당리와 봉상면의 구정리 일보와 창덕면의 월산리 일부와 익산군 우북면의 덕동, 관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 으뜸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구암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함.

  • 통정(桶井. 통시암) 통시암에는 우물 위를 통으로 짠 샘이 있었다.
  • 구정(九井里. 九亭. 龜井) 부분명-구복, 창리, 야산리, 신성리 구정리는 본시 구정(龜井)으로 썼으니 거북샘과 관계된 이름일 것이다. 수복은 뒷산의 바위가 거북이 엎드린 형상이라 한다. 창리에는 관창(官倉)이 있었다. 야산리는 본 이름이 배미산이고 배미산은 산이름으로 그 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므로 일컫던 명칭이다. 신성리는 창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예전에는 그곳에 여우가 많아서 여수골이라고도 했다.
  • 원구암(元九岩. 元九岩) 부분명-서당리 원구암은 본 이름 구암리를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구암은 뒷산에 거북바 위가 있다. 서당리에는 전에 서당이 있었으리라고 한다. 혹 서쪽등성이란 뜻에서 서등이라 한지도 모른다.

둔산리 (芚山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우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둔산리 봉암리 신하리 산정리 산주리 명동리 신둔리와 용암리 죽동리 구복리의 각 일부와 봉상면 구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 으뜸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둔산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됨.

  • 원둔산(元芚山. 등지매) 부분명-금반리(金盤里) 원둔산은 본 이름 둔산을 법정 이와 구분하기 위하여‘원(元)’을 덧붙인 것. 둔산밑에 위치했기에 산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둔산에는 옛날 군대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금반리는 뒷산이 금반옥저형(金 盤玉著形)이라 한다.
  • 산정(山亭里) 부분명-등길리(燈吉里) 산정에는 소나무 정자가 있어 일컫던 이름이라 하고, 등길리는 앞 산에 암야괘등형(暗夜卦燈形)이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 명평(明平) 부분명-명동(明洞), 평들 명평은 명동과 평들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명동은 평들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평들은 명동 동북 쪽에 있는 마을.
  • 신봉(新鳳) 부분명-신하(新下) 신봉은 신하와 봉암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신하는 봉암리 아래에 새로된 마을이고, 봉암은 뒷산 이 름이 봉실산(鳳實山)이고 봉실산과 신하 마을 사이에 큰 바위 셋이 있어 그것을 삼암(三岩)이라 하는데 이 두 이름에서 한자씩 취한 것

용암리 (龍岩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우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용암리 금반리 주동리 일부와 봉상면의 서두리, 구미리의 각 일부에 용화리를 병합하여 이 안의 으뜸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용암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함.

  • 원용암(元龍岩) 부분명-신창동(新倉洞) 본 이름은 용암리인데 법정 이(里)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마을 양쪽에 용처럼 생 긴 용바우가 있어, 또는 용의 알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창동은 용암 동 쪽에 있는 마을.
  • 용화동(龍花洞 用化洞) 부분명-매화동(梅花洞. 매동골) 용화동은 용암의 아랫 마을이므로 ‘용하→용화’인 듯하다고 한다. 매화동은 매동골이 본 이름이다.
  • 주동(舟洞. 배올) 부분명-다복골(多福) 주동에는 예전에 만경강에서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배올’의 ‘올’은 ‘골’이란 말이다. ‘l’밑 에서 ‘ㄱ’이 묵음된 것이다. 다복골은 배올 서쪽에 있는 마을, 무네미는 배올 남쪽에 있는 마을, 학동 은 전주 3공단으로 편입되어 지금은 그 자리에 인가가 없다.

은하리(隱下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은하리 봉실리 추동 봉덕리 은상리 우산리 점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안의 중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은하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됨

  • 추동(湫洞. 秋洞. 三岩) 부분명-요골 추동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뒷산에 추씨(秋氏) 시조의 묘가 있어 추동이라 했다 는 양설이 있다. 추씨 시조설은 임진왜란 때 중국 추장군이 우리 나라 여자와 결혼하여 이 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추장군은 전사하고, 그 아들이 추씨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삼암이란 이름은 이 마을 뒤에 세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 요골은 추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인가가 없다.
  • 우산(牛山) 뒤의 산이 소가 누어 있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한다. 봉동 8경의 하나인 우산낙조(牛山落照)로도 알려졌다.
  • 원은하(元銀河. 바탕밑) 부분명-삼암(三岩) 원은하는 법정 리(里)인 은하리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고, ‘바탕밑’이라는 ‘바탕’은 평평하고 넓은 곳을 뜻한다. 삼바우는 뒤 산에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 생긴 명칭.
  • 은상(隱上里. 박죽나) 은하 위쪽이 되고, 방죽의 안쪽임.
  • 제상(堤上) 방죽(제상제)의 위쪽에 있는 마을.

율소리 (栗所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율소리 봉림리를 병합하여 율소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됨.

  • 봉담(鳳潭. 셋뱅이) 부분명-담안, 행촌(杏村) 봉담은 셋뱅이가 원명인데 어원을 알 수 없고, 행촌에는 살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 원율소(元栗所) 율소에는 밤소라는 못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 밤소라는 못 이름은 못의 둘레에 밤나무가 가득 차서 일 컫던 이름.
  • 치동(峙洞. 잿말) 부분명-신기(新基) 치동의 본 이름은 잿말이고 잿말은 뒤에 재가 있어 생긴 이름. 신기는 율소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
  • 봉림(鳳林. 서낭당이. 먹고개. 項峙) 봉림을 서낭당이라 하는데 그것은 서낭당이 있었기 때문이고, 먹고개는 본시 ‘묵고개’라 하였기로 항 치(項峙)로 썼던 것.

장기리(場基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장기리 주교리 오동리 상월리 신교리 상지리 하월리 임내리 오황리 양정리 사거리 쌍계리 한계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장기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됨.

  • 학교(鶴橋) 부분명- 신교, 구교, 오동, 상지 학교는 학다리의 한자 표기이고, 신교는 구교의 뒤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며, 오동은 오동나무가 있어 생 긴 이름이다.
  • 상장기(上場基. 윗장터)
  • 하장기(下場基. 아랫장터)
  • 월리(月里) 부분명-상월리(上月里), 하월리(下月里) ‘월’의 고어는 ‘다리’로 월리의 본 이름은 ‘다리말’이며, 다리말은 다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 한계(寒溪里) 찬물이 나는 찬샘이 있었다.
  • 오황(五皇里) 오동나무와 대밭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함.
  • 임거(林巨) 부분명-사거리(四巨里) 임내리 ‘임거’는 임내와 사거리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장림은 풍수설에 장림비로혈이라 한다.
  • 쌍계(雙溪里. 쌍계말) 쌍계는 마을 앞에 두군데에서 흘러오는 내가 있어 일컫던 이름.

낙평리 (洛平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낙평리 보상리 낙상리 낙정리 쌍정리 신기리 신풍리 한계리 증평리 성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낙평리라하여 봉동면에 편입함.

  • 보상(寶上里)
  • 쌍정(雙亭里) 쌍정리는 마을 남쪽에 두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어 생긴 이름.
  • 낙정(洛亭里) 부분명-낙상리(洛上里) 낙정리에는 정자나무가 있어 이루어진 이름이고, 낙상리는 낙평의 위쪽이다.
  • 원낙평(元洛平) 낙평의 본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위치가 평평한 돌이므로 그와 관계 있는 이름일 것이다.
  • 신교(新橋)
  • 신기(新基里. 새터) 낙평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

성덕리 (成德里)

본래 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후리 부봉리 대성리 간리와 신화리 신풍리 증평리 성덕리 동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성덕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함.

  • 신중(新中) 부분명-신후리, 중평리 신중은 신후와 중평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신후는 성덕 북서쪽에 있는 마을, 중평리는 신후리 북쪽 들 가운데 있는 마을
  • 원성덕(元成德) 부분명-유편리(油鞭里) 원성덕은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하여‘원(元)’을 덧붙인 것. 유편리는 성덕 북쪽에 있는 마을.
  • 대복(大伏) 부분명-대성리(大成里), 구복리(九伏里) 대복은 대성과 구복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구복리는 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 간리(澗里) 시냇가 마을이므로 간리.

구미리 (九尾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미리 정동리 봉계리 줄리와 점리 서두리 신화리의 각 일부와 우동면의 주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구미리라하여 봉동면에 편입함.

  • 정동(井洞. 店洞) 정동은 큰 샘이 있어 생긴 명칭.
  • 서두(西頭) 서두는 이 마을 뒷산이 쥐의 머리와 같아서 서두라 했다. 숱점머리는 서두 북쪽에 있는 마을.
  • 중리(中里. 가운데뜸)
  • 상구미(上九尾. 귀미란) 부분명-백정(柏亭), 유강리(柳江里), 평촌 상구미를 상하로 나눈 이름이고, 구미는 본시 구미(龜尾)로 썼는데 그것은 뒷산이 거북이 꼬리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백정에는 전에 잣나무 정자가 있었고, 창촌에는 사창이 있었다.
  • 하구미(下九尾. 아랫구미란) 섬멸은 앞뒤로 내가 있어 섬 같다고 한다.

고천리 (高川里)

본래 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천리 신봉리 명탄리 명덕리 동간리 구미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고천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함.

  • 원고천(元高川. 높은내) 부분명-덕성(德成), 동간리(東澗里) 고천리는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고산천의 내 바닥이 높아 새로 둑을 쌓았다. 덕성은 6.25후 피난민이 정착하여 살며 지은 이름. 동간리는 고천 동북쪽에 있는 마을.
  • 명탄(明灘. 鳴灘) 명탄은 이 마을 앞 시냇가의 여울목과 관계된 이름일 것이다.

신성리 (新城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성리 신덕리 동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성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됨.

  • 송정(松亭) 솔밭이 있고 큰 소나무 정자가 있어 생긴 이름.
  • 신상(新上) 본시 마을 이름이 ‘천내’였는데 홍수로 없어지고, 그 천 내 위에 새로 조성한 마을.
  • 신덕(新德) 부분명-동촌(東村) 신덕의 ‘덕’은 터의 고어이니 ‘신덕’은 ‘새터’라는 말. 동촌은 신덕 동쪽에 있는 마을.

구만리 (九萬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봉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만리 봉강리 서당리와 건전리 동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구만리라 해서 봉동면에 편입함.

  • 원구만(元九萬) 부분명-서당리(書當里) 구만은 본시 궁만(弓灣)으로 썼는데 뒷 산이 활처럼 굽어서, 또는 물굽이 안쪽이기에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서당리에는 서당이 있었다.
  • 봉강(鳳岡里) 봉강리의 뒷산에 봉정(鳳亭)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새알처럼 생겼다 한다. 봉강도 그와 관계된 명칭.
  • 건정(乾田. 연밭) 건전은 토질이 메마르고 또 연밭이 있었다 한다. 장승배기에는 장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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