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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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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례읍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8
조회수 967

 

삼례읍

완주군 2읍 11면의 하나,본래 전주군 지역으로서 (1935.10.1일 이후는 완주군)오백저면이라 하여 수계, 청계, 신포, 덕천, 신덕, 사상, 장포, 송정, 신탁, 청등, 상당, 중탁, 봉황, 만선, 유리, 상신정, 삼계, 정산, 학동, 신정, 석전, 별산, 시목, 신금, 구금, 월산, 상백, 전와, 후와, 상와, 중와, 신후, 상후, 서여, 구주, 상주, 중주, 만경, 마천, 안좌, 신안, 가인, 서신, 대천의 44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고종32년(1895)에 창덕면으로 고쳤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우서면의 후상, 해전, 신사, 신평, 어전, 신왕, 쌍남, 쌍북, 중신, 신평의 10개 동리와 우동면의 서당리 일부와 봉상면의 명덕리 읿부와 익산국 춘포면의 장연, 문종의 각 일부와 같은 군 우북면의 화산리 일부와 같은 군 두촌면의 학연리 일부를 병합히여 옛 삼례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면이라 하여 수계, 신탁, 석전, 신금, 구와, 삼례, 후정, 해전, 어전의 9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1956년 7월8일 법률 제 395호에 의하여 읍으로 승격되고, 1973년 7월1일 대통령령 제 654호에 의하여 익산국 왕궁면의 온수리 일부를 편입하여 삼례, 후정, 어전, 해전, 시금, 석전, 구와, 신탁, 수계, 하리 등 10개리가 되었다.

동쪽은 봉동읍, 남복은 전주시, 서쪽은 익산군 춘포면, 북쪽은 봉동읍과 익산군 왕궁면에 접했다.

삼례리(參禮里)

본래 전주군(1935년 10월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五白條面)의 지역으로 조선조 때 삼례도찰방(參禮都察訪)이 있었으므로 삼례역 또는 삼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후리 산후리 서여리 구주리 상주리 중주리 만경동 마천리 인좌리 신안리 하백리 가인리 동여리(東餘里) 서신리 대천리 구금리와 익산군 두촌면 학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례도찰방역의 이름을 따서 삼례리라 하고 삼례면(읍)에 편입되었다.

  • 상서신(上西新) 서신은 전에 찰방청(察訪廳)이 있던 서쪽에 새로 이루어진 마을인데 서신 중에서도 위쪽에 속한 마을이므로 상서신이라 함.
  • 중서신(中西新) 
    서신 중 가운데 마을, 상서신 참조.
  • 남서신(南西新) 
    서신 중 남쪽에 속한 마을 . 장터는 삼례장.
  • 만경동(萬頃洞.望景洞) 
    만경동은 만경강 근처이므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으므로 망경(望景)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 황금동(黃金洞) 
    황금동은 마을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채소 재배 단지로 삼례 시장 안의 똥을 퍼다 저장하는 똥구덩이가 많아 '똥골목'· . '똥구덩' 이라 했는데 그 곳에 차차 마을이 형성되자 면사무소에서 지어 붙인 이름.
  • 원후동(元後洞, 뒷멀. 구장터) 
    원후동은 후동을 다시 구분한 명칭이고, 후동은 현 읍사무소 뒤에 있는 마을이었으므로 '뒷말→후동' 이다.
  • 후동(後洞. 뒷멀) 
    '원후동 참조'
  • 서여(西余. 西餘. 남안말) 
    '서여'는 본 명칭'남안말'을 다시 위치에 따라 동여(東餘),서여(西餘)로 구분한 이름.
  • 가인(加仁. 가인멀) 
    부분명-비석리 가인은 가린멀의 변음이고, 가린멀은 갈라진 마을 즉 근처 마을에서 새로 이루어진 마을이란 뜻이다. 비석리는 장터 동쪽에 있는 마을로 여러 공적비가 많이 서 있어 비선거리라 하였으나 그 비를 전에 후정리 삼례역 광장으로 모두 옮겼다.
  • 곰멀(新後洞) 
    '곰'은 '뒤' 또는 '북(北)' 이란 말이니 뒷말 또는 북쪽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명칭이다.
  • 새터(新基) 
    곰멀 동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태평(太平里. 재실뜸. 여수코빼기) 
    본 이름은 재실이 있어 재실뜸이라 했는데 한자명으로 고칠 때 태평리라 했고, 여수코빼기는 이 마을 앞 언덕배기의 지형이 여우의 코와 같아서 생긴 이름.
  • 마천 
    마천(馬川) 부분명-칠목동 마천은 마을 앞의 내를 마을내라 하던 것이 '말내' 로 줄어 마천(馬川)이 되고, 옷나무골은 마천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옻나무가 많았다 한다.
  • 화산(華山) 
    화산은 마을 뒷산 이름이 화산이다. 유적으로는 곰멀과 비선거리 사이에 삼례도찰방역(蔘禮都察訪驛)이 있었는데 도찰방의 관할은 전주의 반석역(半石驛), 임실의 오원역(五原驛)과 갈담역(葛潭驛), 임피의 소안역(蘇安驛), 익산의 재곡역(才谷驛)과 양재역(良才驛), 전주의 앵곡역(鶯谷驛), 정읍의 거산역(居山驛)과 천원역(川原驛), 영원역(瀛原驛), 부안의 부흥역(扶興驛), 김제의 내재역(內才驛)등 12역이었다.

후정리(後亭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창덕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창덕면 후정리 서신리 일부와 우서면의 후상리 해전리 일부와 익산군 우북면의 화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 내의 으뜸 마을인 후정의 이름을 따서 후정리라 함.

  • 방촌(芳村) 방촌은 광복 후에 명명된 이름이다.
  • 원역전(元驛前) 
    삼례 기차역 앞의 마을인데 그 옆에 다시 마을이 형성되자 그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 후역전(後驛前) 
    원역전 참조, 원역전의 뒷마을
  • 원후정(元後亭) 
    뒷산에 정자나무가 있어 후정이라 했는데 후정이 법정리의 이름이 되자 그와 구분하기 위하여 · 원(元) · 을 덧붙인 것.
  • 원후상(元後上) 
    후정리의 윗 마을이므로 '후상' 이라 했는데 옆에 다시 인가가 늘어 그것을 구분하기 위하여 원후상이라 함.
  • 후상(後上) 
    원후상 참조.
  • 금반(金盤里) 
    마을 뒤 화산에 옥녀봉이 있는데 그 위에 금반형의 바위가 있다 함.
  • 비비정(飛飛亭) 
    예전 전주 팔경의 하나로 조선 선조 6년에 최영길(崔永吉)이 창건(영조 28년)한 정자를 관찰사 서명구(徐命九)가 중건하여 관정(官亭)이 된 정자 이름이 비비정인데 정자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어전리(於田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우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어전리 신왕리 쌍남리 중시리 쌍북리 신평리의 각 일부와 익산군 춘포면의 문종리 일부를 병합하여 리내의 으뜸 마을의 이름을 따서 어전리라 함.

  • 원어전(元於田. 느랏) 
    원어전의 '원(元)' 은 법정 이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덧붙인 것이니 '어전' 즉 본 이름은 · 느랏(늘앗) · 인데, '늘=於 밭=田' 의 변음이다. 고대에 '밭' 이 ㄹ 밑에서는 '앗' 이 된다. '늘밭' 은 늘어진 밭, 즉 긴 밭이란 뜻인데 그런 곳에 생긴 마을이라고 보아야겠다.
  • 신왕(新旺. 소란터. 송내동) 
    원 이름은 소란터고, · 소란 · 은 솔밭안의 뜻이다.
  • 신평(新坪. 봉개) 
    해전 동쪽 들 가운데 새로 생긴 마을이므로 들의 새마을이란 뜻으로 일컫던 이름.

해전리(海田里)

본래 전주군(1935. 10월 이후는 완주군) 우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폐전리 신기리 신평리의 각 일부와 익산군 촌포면의 장연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의 으뜸 마을인 해전의 이름을 취하여 해전리라 함.

  • 원해전(元海田) 
    부분명-새터 원해전은 법정 리와 구분한 명칭, 해전은 전에는 만경강 조수가 출입하던 곳이었으므로 일컫던 이름. 새터는 해전 동편에 새로 생긴 마을
  • 중해전(中海田) 
    원해전 참조. 해전의 가운데 마을
  • 장연(長淵. 앞장연) 
    장연은 예전에 마을 앞에 긴 못이 있어 그 못 이름이 장연인데 못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읍지에 의하면 장연의 둘레가 13,687척이고 깊이가 11척이라 했다. '앞장연' 이라는 이름은 익산군 춘포면 용연리의 장연 마을의 앞이 되므로 생긴 이름이다.

신금리(新金里)

본래 전주군(1935. 10월 이후는 완주군)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금리 별산리 시목리와 월산리 구금리 상백리 신정리 석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리내 중심 마을의 이름을 따서 신금리라 함.

  • 원신금(元新金) 
    부분명-구금산, 금산리 원신금은 구금산에서 새로 생긴 마을이고, 법정 리명과 구별하기 위하여 '원(元)' 을 덧붙인 것. 구금산에서는 전에 금이 났다 한다. 진사멀에서는 진사가 살았다.
  • 백두리(白頭里. 白案里 上白리) 
    별산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 별산(別山里. 鱉山里) 
    별산리는 뒷산이 자라 형국이라 하여 본시 '별산(鱉山)' 으로 씀. 시목리는 별산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골→시목( · 木)' 이라 한다.
  • 월산(月山里) 
    월산 밑에 있는 마을로 산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것. 월산은 지형이 달과 같다고 한다.
  • 농원(農園. 서라벌 농원) 
    별산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근래에 여러 사람이 농원을 조성함으로써 생긴 마을이다. 신금리에 있는 사적지(事蹟地)로는 진사멀 남쪽에 이선배(李先培) 효자 정문이 있고 월산리 북쪽에는 월산리 방죽, 시목리 동북쪽에는 시목리 방죽, 월산리 방죽의 북쪽에는 사제방죽(월산리 상제)이 있다. 사재방죽이라는 이름은 그 방죽 모양이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아서 생긴 것이라 한다. 진사멀 남쪽에는 서낭댕이라는 서낭 터가 있다.

석전리(石田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석전리 상신정리, 삼계리 정산리 학동리와 청동리, 신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리내 중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석전리라 함.

  • 원석전(元石田) 
    돌밭이 많아서 석전(石田)인데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 을 덧붙인 것.
  • 남석전(南石田) 
    부분명-삼정(三井.세샘거리) 남석전은 원석전의 남쪽 마을이므로, 세샘거리에는 우물이 세 곳에 있다.
  • 신정(新亭. 新井. 新汀) 
    부분명-상신정, 하신정, 삼계리, 신촌 신정은 하신정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일컫던 이름이라 하고, 상신정 하신정은 신정을 위치에 따라 구분한 명칭이며, 삼계리는 하신정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새터는 하신정 동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다.
  • 청등(靑登里. 靑燈) 
    산신정의 청룡(靑龍), 즉 왼쪽 등성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청룡 등성이라는 뜻에서 일컫던 이름
  • 정산(井山) 
    산밑에 샘이 있어 생긴 이름. 바. 학동(鶴洞) 학이 많이 서식했다고도 하고, 지형이 학의 형국이라고도 함

구와리(舊瓦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전와리 후와리 상와리 중와리와 구금리 유리 상백리 송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안의 으뜸 마을을 취하여 구와리라 함.

  • 전와(前瓦) 
    부분명-원구와(元舊瓦) 전와는 와리(瓦里)를 위치에 따라 구와를 표준으로 전 후 상 중으로 구분한 명칭, 원구는 이 네 마을 중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동리로 기와를 굽던 기와막이 있어 생긴 이름.
  • 후와(後瓦) 
    부분명-상와(上瓦), 중와(中瓦). · 전와 · 참조.
  • 유리(柳里.버드리) 
    앞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생긴 이름인데 공교롭게도 유씨가 많이 살아 유리인 듯이 느껴진다고 한다.

신탁리(新卓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탁리 상탁리. 중탁리 봉황리 상신리 반석리 송정리 유리 사상리 장포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의 으뜸 마을의 이름을 따서 신탁리라 함.

  • 상탁(上新里. 원신탁) 
    부분명-중탁리(中卓里) 신탁의 위쪽에 있으므로 상탁이라 하고, 원신탁은 원래의 신탁리로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한 것. 중탁은 상탁과 구분된 이름
  • 송정(松亭里) 
    부분명-당멀재. 봉황동(鳳凰洞) 송정은 소나무 정자가 있어 이루어진 이름. 이 정자나무는 최근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당멀재는 송정리 서쪽에 있던 마을로 당집이 있었다. 봉황동은 지형이 봉황이 깃든 형국이라 하나 우리 지명 중 · 봉황 · 은 부엉이가 깃든 곳이 많다.
  • 상신(上新里) 
    부분명-만석리(萬石里), 신서(新西) 상신은 신탁 마을 위쪽이 되므로 붙인 이름. 만석리는 만석 거부가 살았다고 함., 신서는 만석리 동쪽에 있는 마을.

수계리(峀溪里)

본시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오백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수계리 청계리 신포리 덕천리 신덕리와 사상리 장포리 송정리 신탁리 청동리의 각 일부와 우동면 서당리 일부와 봉상면 명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 안의 중심 마을의 이름을 취하여 수계리라 하여 삼례면에 편입되었다.

  • 원수계(元峀溪) 
    부분명-원터(院골) 원수계는 법정 이의 명칭을 취한 마을이므로 이와 구별하기 위하여 · 원(元) · 을 덧붙인 것. 원터는 원수계 동쪽에 있는 마을로 원님이 살았다고 한다.
  • 신포(新浦里) 
    부분명- 서남당이, 청계리(淸溪里) 신포리는 갯벌을 개척하고 새로 마을이 이루어진 곳이니 '새개→신포' 다. 서낭당이는 신포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서낭당이 있었다. 청계리는 신포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우동권의 깨끗한 물이 흐른다.
  • 신기(新基) 
    부분명-덕천리(德川里), 신사리(新沙里. 모래거리), 신봉리(新鳳里) 신기는 신복리 신사리 덕천리를 한 분리로 묶어 명명한 이름이다. 덕천리의 '덕' 은 고어로 '터' 또는 언덕이라는 말이니 텃내 또는 언덕내의 뜻인데 덕천 앞에 내가 흐르니 내의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여겨진다. 신사리는 모래거리가 본 이름이고, 그 곳은 모래가 많아 생긴 것이다. 신봉리는 덕천리 동쪽에 있는 마을.
  • 장포(長浦里. 장펄리) 
    예전에는 만경강 조수가 그곳까지 들어와 긴 갯벌에 위치했으므로 '긴갯벌→장포' 다.

하리(下里)

본래 전주군(1935. 10. 1일 이후는 완주군) 회포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리 신하리 신원리 신창리 신평리 송정리 용전리와 창덕명의 구와리, 상백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하리라 하여 춘포면에 편입되었다가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 453호에 의하여 삼례면에 편입됨

  • 신풍(新豊) 
    부분명-신중리(新中里), 신평리(新坪里) 신풍은 근래 새로 이루어진 마을로 마을 이름으로 명명된 것. 신중리는 신평리 서쪽에 있는 마을로 신평리와 조샛(조소)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신중'이라 하고, 신평리는 들 가운데 새로 생겨 일컫는 이름. 나. 조사(助沙里. 조샛. 창뜸) 창뜸이라는 명칭은 전에 조세를 받아 보관하던 관창(官倉)이 있어 생긴 이름
  • 용전(龍田) 
    부분명-신기(新基) 용전은 마을 근처에 용지보(龍池洑)가 있어 생긴 이름, 신기는 용전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
  • 신복(新卜, 新洑) 
    부분명-송정 새로 생긴 보가 있어 신보(新洑)라 했으나 '보(洑)' 가 우리 관용음으로는 '보' 지만 본음으로 읽어 · 복 · 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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