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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 명당과 발산 소씨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8
조회수 967

완주군 이서면 이문리 산정부락에는 명당(明堂)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부터 3백여년 전 이곳 명당리에 효성이 지극하고 마음씨 착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산에 밭을 일구어 근근히 끼니를 이어가는 어려운 살림중에서도 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단란하게 살아갔다. 다만 슬하에 자녀가 없는 것이 한가닥 아쉬움 이었다. 
부모가 세상을 뜨자 효심이 지극한 이들 부부는 돌아가신 부모를 좋은 묘소에 모시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래서 뒷 뜰에 단을 모셔 놓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서 명당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던 도승(道僧)이 해는 저물고 갈곳이 없다며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다. 부부는 이를 쾌히 승낙하고 정성을 다해 도승을 대접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도승은 산에 올라 산세(山勢)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몇날 며칠이 되어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산에 올라 산세만 살피는 것이었다. 그래도 부부는 조금도 싫은 낯을 하지않고 어려운 형편에서나마 지성을 다해 도승을 모셨다. 
하루는 도승이 주인을 부르더니 『당신들의 정성에 정말 감탄했오. 당신들의 그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보답으로 묘자리를 하나 구해 주겠오』하고 말했다. 도승은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는 주인을 데리고 산을 가더니 묘자리를 하나 일러 주었다. 
『이 곳에 묘를 쓰시오. 이곳은 벌 명당이라는 혈(穴)이요. 뒤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멍덕(벌통을 말함)봉이고 바로 앞의 날줄기가 꽃날봉이요. 그 밑은 젖샘이고 옆에 있는 날줄기는 연모(연꽃밭)당이요』
이렇게 산세를 하나하나 설명한 도승은 『이곳에 묘를 쓴 뒤에는 멍덕복의 멍덕(벌집)이 나오도록 허물어 주시오. 멍덕이 흙으로 덮여서 벌이 나오지를 못하니 흙을 헐어야 벌이 나와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오. 그러면 벌들이 꿀을 모아서 멍덕에 저장하고 새끼를 많이 치게 될 것인즉 이곳에 묘를 쓴사람도 자손이 번창하고 재물도 왕성할 것이요』하고 말했다. 

도승이 떠나자 이 부부는 너무나 기쁘고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벌명당에 부모의 묘를 쓰고 멍덕봉의 봉우리를 헐어 버렸다. 
그러자 이곳으로부터 수 많은 벌떼가 나와 북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여겨 벌떼를 따라가 보니 십리도 채 못간 곳에 도승이 벌에 쏘여 죽어있었다.
부부는 도승의 시체를 부모의 묘와 나란히 모시고 도승이 일러준대로 북쪽 30리밖인 익산(益山)군 금마(金馬)면에 가서 자리를 잡고 살았다. 

부부는 도승이 말한 것처럼 지금껏 없던 자녀를 얻고 대대로 일가가 번창해서 거족(巨族)을 이루게 되니 이들이 지금의 발산(鉢山) 소(蘇)씨요, 벌명당의 유래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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