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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神唱) 권삼득(權三得)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1.18
조회수 954

인간의 음성으로서 그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예술의 세계를 두루 섭렵한 선생은 신창(神唱)의 경지에까지 이른 우리나라 8대 명창중의 한 분이었다. 

사람소리, 새소리, 짐승소리 등 세가지 소리를 터득했다하여 스스로 삼득(三得)임을 자칭한 선생의 본명은 정이었다. 
안동 권씨 양반가문 권래언의 둘째 아들로 1771년(英祖 47년)에 태어난 선생의 출생지는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반상(班常)의 계급 구별이 엄격했던 때에 선비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타고난 재질을 살리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문을 박차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대자연의 서기가 감도는 심산유곡, 거기에 떨어지는 장쾌하고 웅장한 폭포소리를 견주며 수련의 나날을 보낸 선생은 피를 토하고 살을 깎아내는 각고의 노력 끝에 명창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생의 가풍(歌風)은 높고 크게 외치는 소리로서 가락은 판소리 동편제에 가까운 중고제로서 특히 소리의 위아래가 분명해, 듣는 이로 하여금 씩씩하고 명쾌함을 느끼게 했다. 
선생의 드렁조 가락은 흥부가에서 특히 뛰어났다. 놀부가 가노(家奴)들을 데리고 제비사냥 하는 장면이 원형인데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히 신창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불우한 한 세대를 살았던 선생에 대한 기록은 희미하고 다만 오늘날 전설처럼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선생은 1841년(憲宗 7년) 그의 나이 일흔 하나가 되던 해 소리를 놓으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용진면 구억리 이목정 양지바른 산기슭에 소리구멍과 함께 조용히 잠들어 있는 선생은 분명 창(唱)을 위해 태어나서 창과 더불어 살다간 위대한 예술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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