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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소개

유래/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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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면

완주군 3읍 10면의 하나.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옛 운제현의 동쪽이 되므로 운동상면이라 하여 승치, 미서, 미남, 백암, 성북, 거사, 운재, 백석, 구제, 수치, 수청, 엄목, 현동, 완창, 상장, 중장, 가척, 마치, 덕동, 용평, 상산, 하산, 서평, 신복의 24개 동.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운동하면의 안하리, 석교리 일부와 운서하면의 옥포리 일부와 충청남도 연산군 양량소면의 산북, 기동의 2개 리를 병합하여 전주군에 편입하여 운선면이라 하여 승치, 성북, 구제, 완창, 장선, 산북의 6개 리로 개편/관할하였다. 1935년 전주가 부로 승격됨에 따라 전주군이 완주군이 되고, 승치, 성북 2개리를 화산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운동하면의 전역을 편입하여 운주면으로 고쳐서 장선, 완창, 산북, 구제, 고당, 경천, 용복, 가천의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66년 경천출장소를 두어 경천, 용복, 가천의 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89년 4월1일 이 3개 리가 경천면으로 분립했다.
동쪽은 충청남도 금산군남이면, 남쪽은 동산면, 고산면과 진안군 주천면, 서쪽은 화산면, 북쪽은 충청남도 논산군 양촌면,벌곡면과 충남 금산군 진산면에 닿음.

장선리(長仙里)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장리 주장리 거척리 마치리 덕동 용평리를 병합하고 장선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되었는데 1935년 면명이 운주면으로 바뀜.
원장선(元長仙)

부분명-중장(中長. 바깥장선). 상장(上長. 안장선) 원장선은 이의 명칭을 취한 으뜸 마을이고, 중장 상장 등은 장선을 위치에 따라 구분한 것.

내장선(內長仙)

원장선마을 분리

덕동(德洞)

‘덕’은 터 또는 언덕의 고어다.

가척리(加尺里. 가자리)

뒤에 있는 장선리재가 마치 자로 그은 것처럼 곧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가재형국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월당(月當)

부분명-월촌(月村. 당재. 재실뜸) 월당은 월촌과 당치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이다. 월촌은 들 가운데 떨어져 있어 ‘건너뜸’이고, 당치에는 전에 당집이 있었다. 뒷산 기슭에 부여서씨의 재실이 있어 재실뜸이라고도 한다.

월촌

월당마을 분리

중촌(中村)

부분명-용평 중촌은 장선리 가운데에 있다. 용평은 들 가운데 있어 벌뜸이라고도 한다. 장이 선다.

내촌(內村. 안뜸)

운주장터 동쪽 안에 있는 마을.

완창리(完昌里)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완창리 엄목리 현동과 운동하면의 안하리를 병합하고 완창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운주면으로 면명이 바뀜.
안심(安心. 安下里)

안심사 밑의 마을이다. 지금은 안심사의 터만 남았다.

원완창(元完昌. 完倉) 부분명-고창말, 봉황동, 새터

원완창은 리명을 취한 으뜸 마을로 본래의 완창리라는 뜻에서 ‘원’을 덧붙임. 완창리에는 전에 환곡 을 저장하던 사창이 있었고, 고창말에도 사창이 있었다. 봉황동은 뒷산이 황새 형국, 도는 봉황 형국이라 한다. 새터는 완창 동쪽에 새로 된 마을.

엄목(嚴木. 엄나무실)

부분명-현동(玄洞. 가마골. 개미골) 엄목에는 전에 큰 엄나무가 있었고, 현동은 터가 가마솥처럼 생겼다 해서 가마골인데 ‘가마’를 ‘현’자로 가차 했다. ‘검다’의 고어는 ‘감다’다.

구제리(九梯里)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제리 백석리 수치리 수청리를 병합하고 구제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됨. 1935년에는 면명을 운주면이라 함.
수청(水淸)

부분명-수치 수청은 앞 냇물이 맑아 생긴 이름이라 하고, 빼재는 수청에서 충남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고개에 뾰족한 바위가 솟아 있어 빼재라 한다.

원구제(元九梯. 구더리. 귀덕리)

부분명-묵방리(墨房里. 먹뱅이. 먹방리), 백석 구제 마을을 구덕리라고도 한다. ‘덕’은 ‘터’라는 말이니 ‘구덕’은 ‘옛터’의 뜻이고 이곳에 예 전 운제현 자리이므로 그로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차도개기는 부근에 차돌이 많아 생긴 이름. 묵방리에 는 전에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었다.

백석

원구제마을 분리

고당리(姑堂里)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고당리 고중리 축령리 태평리 삼거리를 병합하고 고당리라 하여, 운동하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운주면에 편입됨.
삼거리(三巨里)

부분명=태평리(太平里) 삼거리는 논산 금산 진안으로 가는 삼거리. 태평리는 삼거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현재는 2세대 뿐임.

원고당(元姑堂)

본시 고당리의 으뜸 마을.

다. 피목(皮木. 비모기. 皮木里. .姑中里)

부분명-축령 피목은 전에 큰 피나무가 있었고, 사리재는 재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싸리가 많았다고 한다. 전에는 인가가 있었으나 현재에는 없다.

금당리(金塘里)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금당리 원리 옥배리 궁동 대궁동을 병합하고 금당리라 하여 운동하면에 편입했다가 1935년 운주면에 편입됨.
궁동(弓洞. 활골)

부분명-대궁동, 문암, 이목적. 입암 궁동은 산 모롱이가 활처럼 굽어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이 마을에서 활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대궁동도 마을이 활처럼 굽었다. 문암에는 문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목정에는 전에 배나무 정자가 있었고 찬샘이 있었다. 선바위에는 앞에 선바우라는 바위가 있다. 이목적, 입암에는 지금 인가가 없다.

옥배(玉盃)

풍수설에는 옥배혈이 있다고 한다.

용계원 (龍溪院. 院里, 元里)

조선조 때 용계원이 있었다.

원금당(元金當. 金當)

이 마을에 금당사(金當寺)가 있어 절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산북리(山北里)

본래 충청남도 연산군 양량소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산북리, 고산군, 운용상면의 상산리 하신리 서평리 신북리를 병합하고 산북리라 하여 전라북도 전주군 운선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는 면명이 운주면으로 바뀜.
신복(新伏, 薪伏. 저구리)
주암(舟岩. 배바우)

부분명-서평(西坪) 주암에는 돛을 단 배처럼 생긴 배바위가 있다. 서평은 신복 서쪽에 있고 앞에 들이 있다.

기동(基洞, 텃골)

전에 ‘골터’라고하였으니 옛날 현(峴)의 치소(治所)였는지도 모른다.

재실(齋室)

부분명- 노은, 말노은, 전주노랭이 재실에는 백씨 문중의 재실이 있고, 전주노랭이는 노은 남쪽에 있는 마을인데 전에는 전주 땅으로 고산군의 말노은과 접경하여 생긴 이름이다. 말노은에는 현재 인가가 없다.

당헌(當軒. 당마루)

부분명- 상산북(上山北. 上山 . 웃말) 당헌에는 당집이 있었을 것이다. ‘마루’는 ‘머리’. 상산북은 산북 동쪽 위에 있는 마을.

평촌(坪村, 중산북)

부분명-고산촌(高山村) 평촌은 들판이고 산북의 가운데이므로 중산북이라고도 한다. 고산촌은 앞의 내가고 산군의 북쪽 경계였으므로 생긴 이름.

고산촌

평촌마을 분리.

광두소(光斗所. 下北山. 下山)

산북 서북쪽 아래에 있어 하산북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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