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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전설
100%
봉동읍
1973년 7월1일 대통령령 제 6543호에 의하여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고산면, 남쪽은 용진면, 서쪽은 익산군 왕궁면, 북쪽은 비봉면에 접했다.
제내리(堤內里)
옥동(玉洞)
예전 우주현(紆州縣)의 치소(治所)로 옥(獄)이 있던 자리이므로 옥동이라 함. 일설에는 앞 산에 옥녀봉(玉女峰)이 있어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만동(慢洞. 蔓洞)
풍수설에 장군대좌형(將軍對座形)으로 활을 당기는 형국이므로 만동이라 했다 한다.
무관(舞觀)
부분명- 관음(觀音) ‘무석’은 무등과 석간에서 한 자씩 취한 이름. 관음은 그 곳에 관음사가 있었다. 무등은 뒷산이 옥녀 무수형(玉女舞袖形)이라 하여 생긴 이름이라 하고, 석간은 마을 아래 돌 사이에서 맑은 물이 솟아 일컫 는 이름이라 한다.
만경동(萬頃洞.望景洞)
만경동은 만경강 근처이므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으므로 망경(望景)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신촌(新村. 새말)
부분명-서초리(西招里. 西楚골) 신촌은 제촌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고, 서초리는 제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 우주현의 고을 터인 구기(舊基)의 서쪽이 되므로 ‘서촌골→서초골’이라 함.
제촌(堤村. 방죽안)
본시 제내리의 중심 마을로 방죽의 안쪽에 위치했으므로 생긴 명칭.
장구리(長久里)
원장구(元長久)
원장구는 법정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원(元)’을 덧붙인 것.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목동의 본 이름은 나막골로 나무가 많았다. 죽간리는 장구 동남쪽에 있는 마을
역기(驛基. 역터, 新亭)
우주현 때 역이 있었다.
전강(前江)
부분명-신기 전강은 마을 앞에 내가 흘러 ‘앞강마을→전강’ 신기는 역기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재빼기는 재가 박 힌 곳이란 말로 ‘잿등’과 같은 이름.
구암리(九岩里)
통정(桶井. 통시암)
통시암에는 우물 위를 통으로 짠 샘이 있었다.
구정(九井里. 九亭. 龜井)
부분명-구복, 창리, 야산리, 신성리 구정리는 본시 구정(龜井)으로 썼으니 거북샘과 관계된 이름일 것이다. 수복은 뒷산의 바위가 거북이 엎드린 형상이라 한다. 창리에는 관창(官倉)이 있었다. 야산리는 본 이름이 배미산이고 배미산은 산이름으로 그 산 서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므로 일컫던 명칭이다. 신성리는 창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예전에는 그곳에 여우가 많아서 여수골이라고도 했다.
원구암(元九岩. 元九岩)
부분명-서당리 원구암은 본 이름 구암리를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구암은 뒷산에 거북바 위가 있다. 서당리에는 전에 서당이 있었으리라고 한다. 혹 서쪽등성이란 뜻에서 서등이라 한지도 모른다.
둔산리(芚山里)
원둔산(元芚山. 등지매)
부분명-금반리(金盤里) 원둔산은 본 이름 둔산을 법정 이와 구분하기 위하여‘원(元)’을 덧붙인 것. 둔산밑에 위치했기에 산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둔산에는 옛날 군대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금반리는 뒷산이 금반옥저형(金 盤玉著形)이라 한다.
산정(山亭里)
부분명-등길리(燈吉里) 산정에는 소나무 정자가 있어 일컫던 이름이라 하고, 등길리는 앞 산에 암야괘등형(暗夜卦燈形)이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명평(明平)
부분명-명동(明洞), 평들 명평은 명동과 평들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명동은 평들 서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평들은 명동 동북 쪽에 있는 마을.
신봉(新鳳)
부분명-신하(新下) 신봉은 신하와 봉암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신하는 봉암리 아래에 새로된 마을이고, 봉암은 뒷산 이 름이 봉실산(鳳實山)이고 봉실산과 신하 마을 사이에 큰 바위 셋이 있어 그것을 삼암(三岩)이라 하는데 이 두 이름에서 한자씩 취한 것
용암리(龍岩里)
원용암(元龍岩)
부분명-신창동(新倉洞) 본 이름은 용암리인데 법정 이(里)와 구분하기 위하여 ‘원(元)’을 덧붙인 것. 마을 양쪽에 용처럼 생 긴 용바우가 있어, 또는 용의 알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창동은 용암 동 쪽에 있는 마을.
용화동(龍花洞 用化洞)
부분명-매화동(梅花洞. 매동골) 용화동은 용암의 아랫 마을이므로 ‘용하→용화’인 듯하다고 한다. 매화동은 매동골이 본 이름이다.
주동(舟洞. 배올)
부분명-다복골(多福) 주동에는 예전에 만경강에서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배올’의 ‘올’은 ‘골’이란 말이다. ‘l’밑 에서 ‘ㄱ’이 묵음된 것이다. 다복골은 배올 서쪽에 있는 마을, 무네미는 배올 남쪽에 있는 마을, 학동 은 전주 3공단으로 편입되어 지금은 그 자리에 인가가 없다.
은하리(隱下里)
추동(湫洞. 秋洞. 三岩)
부분명-요골 추동은 가래나무가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뒷산에 추씨(秋氏) 시조의 묘가 있어 추동이라 했다 는 양설이 있다. 추씨 시조설은 임진왜란 때 중국 추장군이 우리 나라 여자와 결혼하여 이 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추장군은 전사하고, 그 아들이 추씨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삼암이란 이름은 이 마을 뒤에 세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생긴 이름. 요골은 추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인데 지금은 인가가 없다.
우산(牛山)
뒤의 산이 소가 누어 있는 와우형(臥牛形)이라 한다. 봉동 8경의 하나인 우산낙조(牛山落照)로도 알려졌다.
원은하(元銀河. 바탕밑)
부분명-삼암(三岩) 원은하는 법정 리(里)인 은하리와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고, ‘바탕밑’이라는 ‘바탕’은 평평하고 넓은 곳을 뜻한다. 삼바우는 뒤 산에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있어 생긴 명칭.
은상(隱上里. 박죽나)
은하 위쪽이 되고, 방죽의 안쪽임.
제상(堤上)
방죽(제상제)의 위쪽에 있는 마을.
율소리(栗所里)
봉담(鳳潭. 셋뱅이)
부분명-담안, 행촌(杏村) 봉담은 셋뱅이가 원명인데 어원을 알 수 없고, 행촌에는 살구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원율소(元栗所)
율소에는 밤소라는 못이 마을 북쪽에 있었다. 밤소라는 못 이름은 못의 둘레에 밤나무가 가득 차서 일 컫던 이름.
치동(峙洞. 잿말)
부분명-신기(新基) 치동의 본 이름은 잿말이고 잿말은 뒤에 재가 있어 생긴 이름. 신기는 율소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
봉림(鳳林. 서낭당이. 먹고개. 項峙)
봉림을 서낭당이라 하는데 그것은 서낭당이 있었기 때문이고, 먹고개는 본시 ‘묵고개’라 하였기로 항 치(項峙)로 썼던 것.
장기리(場基里)
학교(鶴橋)
부분명- 신교, 구교, 오동, 상지 학교는 학다리의 한자 표기이고, 신교는 구교의 뒤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며, 오동은 오동나무가 있어 생 긴 이름이다.
상장기(上場基. 윗장터)
하장기(下場基. 아랫장터)
월리(月里)
부분명-상월리(上月里), 하월리(下月里) ‘월’의 고어는 ‘다리’로 월리의 본 이름은 ‘다리말’이며, 다리말은 다리가 있어 생긴 이름이다.
한계(寒溪里)
찬물이 나는 찬샘이 있었다.
오황(五皇里)
오동나무와 대밭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함.
임거(林巨) 부분명-사거리(四巨里)
임내리 ‘임거’는 임내와 사거리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장림은 풍수설에 장림비로혈이라 한다.
쌍계(雙溪里. 쌍계말)
쌍계는 마을 앞에 두군데에서 흘러오는 내가 있어 일컫던 이름.
낙평리(洛平里)
보상(寶上里)
쌍정(雙亭里)
쌍정리는 마을 남쪽에 두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어 생긴 이름.
낙정(洛亭里)
부분명-낙상리(洛上里) 낙정리에는 정자나무가 있어 이루어진 이름이고, 낙상리는 낙평의 위쪽이다.
원낙평(元洛平)
낙평의 본 이름은 모르겠지만 그 위치가 평평한 돌이므로 그와 관계 있는 이름일 것이다.
신교(新橋)
신기(新基里. 새터)
낙평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
성덕리(成德里)
신중(新中)
부분명-신후리, 중평리 신중은 신후와 중평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신후는 성덕 북서쪽에 있는 마을, 중평리는 신후리 북쪽 들 가운데 있는 마을
원성덕(元成德)
부분명-유편리(油鞭里) 원성덕은 법정 리와 구분하기 위하여‘원(元)’을 덧붙인 것. 유편리는 성덕 북쪽에 있는 마을.
대복(大伏)
부분명-대성리(大成里), 구복리(九伏里) 대복은 대성과 구복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구복리는 거북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 한다.
간리(澗里)
시냇가 마을이므로 간리.
구미리(九尾里)
정동(井洞. 店洞)
정동은 큰 샘이 있어 생긴 명칭.
서두(西頭)
서두는 이 마을 뒷산이 쥐의 머리와 같아서 서두라 했다. 숱점머리는 서두 북쪽에 있는 마을.
중리(中里. 가운데뜸)
상구미(上九尾. 귀미란)
부분명-백정(柏亭), 유강리(柳江里), 평촌 상구미를 상하로 나눈 이름이고, 구미는 본시 구미(龜尾)로 썼는데 그것은 뒷산이 거북이 꼬리 같아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백정에는 전에 잣나무 정자가 있었고, 창촌에는 사창이 있었다.
하구미(下九尾. 아랫구미란)
섬멸은 앞뒤로 내가 있어 섬 같다고 한다.
고천리(高川里)
원고천(元高川. 높은내)
부분명-덕성(德成), 동간리(東澗里) 고천리는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고산천의 내 바닥이 높아 새로 둑을 쌓았다. 덕성은 6.25후 피난민이 정착하여 살며 지은 이름. 동간리는 고천 동북쪽에 있는 마을.
명탄(明灘. 鳴灘)
명탄은 이 마을 앞 시냇가의 여울목과 관계된 이름일 것이다.
신성리(新城里)
송정(松亭)
솔밭이 있고 큰 소나무 정자가 있어 생긴 이름.
신상(新上)
본시 마을 이름이 ‘천내’였는데 홍수로 없어지고, 그 천 내 위에 새로 조성한 마을.
신덕(新德)
부분명-동촌(東村) 신덕의 ‘덕’은 터의 고어이니 ‘신덕’은 ‘새터’라는 말. 동촌은 신덕 동쪽에 있는 마을.
구만리(九萬里)
원구만(元九萬)
부분명-서당리(書當里) 구만은 본시 궁만(弓灣)으로 썼는데 뒷 산이 활처럼 굽어서, 또는 물굽이 안쪽이기에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서당리에는 서당이 있었다.
봉강(鳳岡里)
봉강리의 뒷산에 봉정(鳳亭)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새알처럼 생겼다 한다. 봉강도 그와 관계된 명칭.
건전(乾田. 연밭)
건전은 토질이 메마르고 또 연밭이 있었다 한다. 장승배기에는 장승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