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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소개

유래/전설

100%

비봉면

완주군 3읍10면의 하나.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 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천호, 명곡, 내월, 동리, 소농, 송치, 자암, 백도, 용동, 죽림, 봉황, 평촌, 문암, 장구, 신기의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북상면을 구라, 수출, 부소, 산정, 평지, 수선, 당산, 송수, 관동, 구상, 구중, 구하, 구평, 금곡, 이전, 명곡, 칠전, 신곡, 사곡의 20개 리와 북하면의 대상, 대하, 천호, 시목, 신기, 선동의 5개 리와 남면의 용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비봉산의 이름을따서 비봉면이라 하여 내월, 대치, 백도, 봉산, 소농, 수선, 이전의 7개 리로 개편 관할함.
동쪽과 북쪽은 화산면, 남쪽은 고산면과 봉동읍, 서쪽은 익산군 왕궁면과 여산면에 각각 닿음.

봉산리(鳳山里)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리 용동 죽림리 봉황리 신월리 우리 사치리 염암리와 호계리 봉곡리의 각 일부와 남면의 용암리 일부를 병합하고 봉산리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됨.
봉산(鳳山)

부분명-봉곡(새뺑이) 봉산은 예전 봉상현(鳳山縣)의 치소고 비봉산 밑에 있다. 봉곡은 새뺑이가 본이름인데 ‘뺑이’는 ‘방 이.뱅이’의 변한 말로 있는 곳. 장소, 박혀 있는 곳 등의 뜻이므로 새뺑이는 사이, 사이에 끼어있는 곳이란 말일 것이다.

월암(月岩)

부분명-염암, 신원리. 월촌 월암은 월촌과 염암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염암에는 소금바우라는 바위가 있다. 신월은 월촌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의 뜻. 월촌의 ‘월’의 고어는 ‘다리’고 ‘다리’는 또 들이라는 말이니 들의 마을이라 는 뜻이다.

죽산(竹山)

부분명-죽림(대숲)말.죽산이나 죽림은 대밭이 많아서 생긴 이름.

용동(龍洞)

뒷산의 산세가 용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사치(巳峙=뱀재. 바깟뱀재=外巳峙)

부분명-괘금동, 걸쇠, 탄골, 동사치는 뱀재 밑의 마을이니 재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고, 바깟뱀재는 뱀재를 넘으면 백도리 안백재가 있어 구분된 이름, 괘금동은 뒷산 옥녀봉이 비단을 걸은 형국이라 하나 ‘걸쇠’가 본 이름이다.

소농리(所農里)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소농리 평촌리 문암리 장구리 신기리와 송치리 호계리 각 일부를 병합하고 소농리라 하여 전주군 비봉면에 편입됨.
신복(新福. 新基)

평촌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

문장(文長)

부분명=문암(文岩. 범바위), 양동(陽洞. 양지뜸), 장곡리 문장은 문암과 장곡에서 한 자씩 딴 분리명, 범바우에는 범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다. 양동은 범바우 양지쪽에 있는 마을. 장곡리는 본시 장군리고, 뒷산에 장군바위가 있다.

평치(坪峙)

부분명-평촌, 송치, 대롱 평치는 평촌과 송치에게 한 자씩 취한 분리명, 평촌은 앞에 들이 있는 마을이므로 ‘들말→평촌’. 송치는 뒤 고개에 소나무가 있어 ‘솔치→송치’ 대롱은 이 곳 지세가 대롱과 같다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소농(所農. 소롱골. 小籠)

소농은 본시 소롱(小籠)으로 썼고, 대롱(大籠)과 대비된 이름이다.

내월리(內月里)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내월리 천호동 명곡리 동리와 소농리 송치리의 각 일부와 북상면의 명곡리를 병합하고 내월리라 하여 전주군 비봉면에 편입됨.
동리(東里) 부분명-도덕골(道德洞), 방화동 동리는 마을 서쪽에 서산리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서산리에서 동쪽 마을이라 하여 부른 이름, 서산리는 없어졌다. 도덕동은 방화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 방화동은 본시 물레방아가 있어 ‘방애울’이었다.
명곡(明谷. 代治) 벌치는 넓은 터의 뜻이다.
중리(中里) 부분명-교향(橋項. 다리목) 중리는 내월과 외월의 중간에 있다. 교향에는 돌다리가 있었다.
내월(內月. 月牛谷. 다리실. 안다리실) 부분명-미동, 서학동 내월은 월산(月山)의 안마을이고, 다리실은 월곡(月谷)으로 표기한 것은 월(月)의 고어가 ‘다리’였기 때문이다. 미동은 안다리실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서학동은 안다리실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천호(天呼里. 천壺里. 용천내) 부분명-중뜸 천호는 천호산 남쪽 기슭에 있고, 용천내는 앞에 있는 내의 이름이다. 중뜸은 벌치와 천호의 중간에 있 다. 이 밖에 동리에는 김집(金集)과 유흥종(柳興宗)을 모신 봉양사(鳳陽寺)와 유몽인(柳夢寅) 유소(柳瀟) 유중교(柳重敎) 를 모신 삼현사(三賢寺) 가 있고, 동리 입구에 유습(柳濕) 의 신도비와 유광(柳洸)의 처 한씨의 열녀문이 있다. 성주산 서쪽 기슭에는 성주 산제당이 있고, 천호 공동 묘지에는 오선지의 천주교 순교비가 있다.

대치리(大峙里)

본래 고산군 북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대상리 대하리 천호동 시목동 신기리 선동을 병합하고 대치리라 하여 전주군 비봉면에 편입됨.
산시(山枾)

부분명-산수동(山水洞. 감나무골. 시거목) 산시는 산수동과 시목동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산수골은 송장군 묘라는 묘소가 있어 산소골. 감나무골에는 감나무가 많다.

대상(大上. 大上峙. 웃대치)

곡대치 위 마을.

대흥(大興)

부분명-곡대치, 낙수동, 도통골, 어통골 대흥은 분리명으로 지은 이름. 곡대치는 웃대치와 구분한 이름. 낙수동은 골대치 서북쪽에 있는 마을. 도통골은 웃대치 서쪽마을. 어롱굴은 낙수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

선동(仙洞)

부분명-신기(新基. 새터) 선동은 근처에 선인무수혈이 있다 한다. 신기는 선동 동남쪽에 있는 마을.

백도리(百島里)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서면의 자암리 백도리 북상면의 응암리 칠전리 신곡리 이전리 일부를 병합하고 백도리라 하여 전주군 비봉면에 편입됨.
현암(縣岩)

부분명-현내(縣內. 현내뱀재. 안뱀재. 內巳峙). 자암 현암은 현내와 자암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현내는 예전 현의 치소 안쪽이므로 일컫던 명칭. 자암은 근처에 붉은 바위가 있다.

신기(新基)

담부실 동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다.

담곡(淡谷. 담부실. 장자터)

담비가 많은 골짜기로 담부실이라 하였다 한다. 담비의 고어는 ‘담뵈’지만 사투리가 ‘담부’다.

백도(百島. 온섬이. 원섬이)

지형이 섬 같다고 한다.

능암(能岩. :岩. 능바우)

전에 근처에 큰 묘가 있어 그것을 능이라 하였고, 그 능 뒤에 큰 바위가 있어 능바우라 했다.

이전리(泥田里)

본래 고산군 북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이전리 구상리 구중리 구하리 구평리 금곡리 관동 일부를 병합하고 이전리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됨.
금곡(金谷. 소노실)

금이 났다고 한다.

이전(泥田.진바실)

진흙밭이 많아서 생긴 이름.

구상(舊上)

이 마을에 금구몰니혈이 있다하여 구동이라 하였는데 한자 표기가 바꿔졌다 한다.

구하(舊下. 翠蓮)

취련은 이 곳에 연화도수혈이 있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수선리(水仙里)

본래 고산군 북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수선리 구하리 수출리 부소리 산정리 평지리 당산리 송수리 관동 일부를 병합하고 수선리라 하여 비봉면에 편입된다.
수선(水仙. 물골안)

부분명-관동. 갓골 ‘물골안’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의 안쪽이라는 말, 관동은 갓봉(관모봉) 밑의 마을이고, 관모봉은 모양이 관모처럼 생겼다.

곤동(昆洞. 곤무실. 권무실. 權洞)

곤동에는 권씨가 많이 살아 권동이라고도 하고, 당산은 서쪽에 있는 산 이름이 당산이다.

송수(松樹, 송수골)

소나무가 우겨졌는데 베어버리고 마을을 이루었다.

평지(坪地)

부분명-서당터 평지는 넓고 평평한 곳이고, 서당터에는 서당이 있었다.

산정(山亭里. 산정말. 반저울. 洞)

어귀에 정자나무가 있어 산정동이라 했다. 반곡사가 있다.

부수(扶水)

부분명-부소(扶蘇. 가로개), 수출(水出. 무소골) 부수는 부소와 수철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명. 부소는 마을 뒷산이 부소산이다. 수출은 수선리의 가장 깊은 안골짜기이므로 물이 나오는 시원지다. 무산골은 물산골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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